법문 기록 Dharma Talks of Master Yong Hua

34) Chan Qi • One Hundred Days of Chan (180) - 20221208 #번역 #선화상인 #BTTS #생활불교 #lifebuddhism #친절 #감사 #지혜

Lio. 2022. 12. 10. 01:03
 
1:03:54
return journey is asperous.. as going.
asperous (comparative more asperous, superlative most asperous)
  • rough, rugged, uneven
  • bitter, cruel, severe
 
[번역의 중요성, 우리의 할일] 1:07:00~ 이 즈음부터..
 
선화상인과 그의 제자들에게 크게 감사해야합니다. 선화상인은 큰 스케일로 불교를 미국에 들여왔습니다. tripitika를 미국으로 가져왔습니다 제자들을 훈련시키고 경을 설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에서 득을 봐야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공부하고 들으면서 고마움을 표시해야합니다. 가능하다면 자신의 언어로 이를 번역해야 합니다. 하지만 번역을 하기 전에 일정 수준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번역을 위해 학위를 따는건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지혜가 중요합니다. 선화상인은 번역을 하기 전에 우선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가 겪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영어를 할 수 없었는데도 몇 십년이 지난 뒤에 영어로 번역된 것을 보면 지금까지 나온 것 중 최고입니다. 그가 살아있을때 나온 영어번역들은 좋습니다.
 
당시에는 2단계 아라한이면 되었지만 최근에는 더 힘든 시기이기 때문에 최소한 아라한이어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1지 보살로 번역을 하길 바랍니다. 아라한과 1지 보살의 차이는 크기 때문입니다.
 
조사의 가르침을 배우고 싶다면 선화상인의 것만 봐도 됩니다. 선화상인의 것보다 더 나 outgrow하긴 힘듭니다. 그의 가르침이 오래 오래 영향력을 가지길 바랍니다. 공부를 하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과를 증득하여 그것을 언어 기술과 결합해서 결과물을 내는 겁니다. BTTS Buddhis Text Translation Society. 지금까지 나온 번역물 중 여기꺼가 최고입니다. 학자들의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경은 단지 words가 아닙니다. 지혜가 없다면 삼매력이 없다면 번역할 수 없을 겁니다. 지혜없이 '체'를 전달할 수 없습니다. 더 강조할 수 없을 정도로 선화상인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말합니다. 기회가 있다면, 그의 경에 대한 영어 번역을 고치는 것을 고려해보세요.
 
우선 선화상인은 삼매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고, 그들이 준비가 되었을때 BTTS가 만들어졌고, 그의 훈련 하에서 그 모든 다른 번역보다 나을 수 있게 되었을때, BTTS를 만들었습니다. BTTS라는 스탬프가 찍혀있다면 가장 믿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보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2세대는 그 번역 덕분에 꽤 멀리 갈 수 있었습니다. 번역자의 수준이 득이 되기도 했지만  번역자의 수준보다 높은 선화상인의 가르침의 내용은 걸러지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비슷하게 여기있는 쯔멍이 번역한 열반경은 안봐도 수준이 높지 않았을 것입니다. 허운 대사가 설명한 능엄경처럼요. 그중 많은 부분은 유실되었을텐데, 별로 좋지 않아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 세대는 선화 상인의 가르침을 중국어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어를 알아야하는데, 중국어도 주제에 따라 특화되어있기 때문에 고대의 불교 중국어를 알면 됩니다. 삼매 수준이 높으면 적절하게 번역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 중 번역에 관심이 있다면, 여러분이 영어 텍스트의 수준을 한 단계 올린다면 불교에 굉장한 기여를 하는 것일 겁니다. 우리는 그런 여러분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BTTS 보다 더 나은 결과물이 있을 겁니다. 왜 요즘은 BTTS가 일을 확장하지 않는지 모르겠고, 삼매가 우선이고 언어나 지식은 그 다음인지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마음에 두고, 다른 조사의 가르침은 신경쓰지 마세요. 너무 수준이 낮습니다.

 
[불교는 당신으로부터 나타나는 것]  1:24:47
It has to be lived by you. Has to stay in you, manifest through you. It's not by words. ... the finger pointing to the moon. If you cannot see the moon, the finger is useless. Unless we find a way to bring you to the place for you to see the moon yourself, then you understand Buddhist's teachings. Then it would manifest through everything you do during the day. Wherever you are, whatever you do, to me that's what I call the 'life Buddhism'.
원하는 만큼 경을 번역하고 불교를 공부할 수 있지만, (불교는) 당신을 통해 살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 안에 있어야 하고 당신을 통해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말로 하는게 아닙니다. 만약 당신이 달을 볼 수 없다면 손가락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달을 직접 봐야됩니다. 그렇게 되면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불교는 말로 하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당신이 달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할 수 있는 길을 알려줄 수 있어야 하고, 당신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일상에서 당신히 하는 모든 일에서, 당신이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 '생활 불교'입니다.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우선 더 많은 사람들이 경을 이해할 수 있게 해야하고 누군가는 번역을 더 향상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더 불교가 전보다 더 나아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할 일이 많습니다.

 
 
[남을 돕는 것이 불교] 1:43:37
 
나는 그에게 크게 감화되었는데, 선화상인은 정말 평범해보였습니다. 키가 작은 것만 말고요.
 
But you try to help others, that's speaking dharma loudly enough for me. 누군가에게 친절한 것이 내게는 불교를 크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꼭 불법을 설해야만 불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편견이기도 한데, 승려가 되고, 훈련을 받고, 지원을 받으면서, 내가 당신보다 나아 나는 더이상 고통스럽고 싶지 않아 이런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거기 도달한 이유는 여러분이 모두 우리를 위해 희생하고 우리의 수행을 지지해줬기 때문입니다. 승려는 한 무리의 거지입니다. 미화된 거지들. 그것은 끊임없이 우리를 상기시키는데, 우리가 여러분께 빚을 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당신에게 빚진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희생한 여러분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make it 한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공하고 나는 공하다고요? 그 감정이 없는 스님이 '난 공해. 이제 난 지혜롭다. 감정, 번뇌가 없다' 라고 합니다. 뭐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감사하는 마음은 어디 간건가요? What about gratitude? 그게 무슨 지혜인가요? 스스로를 구제한 것뿐인데. '당신한테 고맙긴 한데, 전 당신처럼 되고 싶진 않아요.' 이런 것은 대승이 아닙니다. 우리가 도달하려면, 당신이 우리가 번뇌가 없는 상태가 되도록 도왔으니 이제는 내가 당신의 번뇌를 덜어주겠습니다. 우리가 번뇌로워지면서요.
 
그래서 나는 (그런 번뇌가 없고 공해진 그들이) 쿵푸가 있는건 알겠지만, 그들로부터 감명받지 않습니다. 왜 선화상인이 그런 일을 했을까요.  그들이 수행할 수 있게 희생했습니다. 당신의 친절에 대해 스스로의 생명을 희생하면서, 사람들의 질병을 짊어지면서, 갚았습니다. 일찍 죽은 것입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수행하고 지혜를 열고 모든 걸 내려놓게 되면서 '너도 내려놓겠다' 이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공하면 그냥 사라져버릴 것이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