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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상인] 반야심경 般若波羅蜜多心經非臺頌解 005 (47~52)

Lio. 2023. 5. 27. 07:50
[선화상인] 반야심경 005 (47~52)
#반야 #바라밀 #완허공 #단멸공 #석법관공 #화성 #분단생사 #변역생사 #망상 #무명
 

行深般若波羅蜜多時。

 

行道修身莫外尋 自性般若深密因 행도수신막외심 자성반야심밀인

白浪沖霄黑波止 涅槃彼岸任運登    백랑충소흑파지 열반피안임운등

時兮時兮勿錯過 慎之慎之取天真    시혜시혜물착과 신지신지취천전

杳杳冥冥通消息 恍恍忽忽見本尊    묘묘명명통소식 황황홀홀견본존   

 

「行」就是修行。「深」是對淺而言深。「般若」就是智慧。「波羅蜜多」就是到彼岸。「時」就是這個時候。這是說觀自在菩薩他所修行的是深般若,不是淺般若。什麼叫深般若?就是妙智慧。什麼叫淺般若?就是小乘四諦、十二因緣。那麼,有妙智慧才能真正到達彼岸,若沒有真正的妙智慧,就不能達到彼岸。那麼誰能達到彼岸呢?就是這位觀自在菩薩,所以釋迦牟尼佛才舉出觀自在菩薩來,因為這一位大菩薩他是修行深般若的,而且已經到達彼岸了。
 
「행行」은 바로 수행입니다. 「심深」은 얕은 것에 대비해서 깊다고 하는 것입니다. 「반야般若」는 바로 지혜이고 「바라밀다波羅蜜多」는 피안에 가는 것을 말합니다. 「시時」는 바로 이 시간을 말합니다. 이는 관자재보살님이 하는 수행이 깊은 반야이며 얕은 반야가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것이 깊은 반야인가요? 바로 묘한 지혜입니다. 어떤 것을 얕은 반야라고 할까요? 바로 소승사제小乘四諦, 십이인연을 말합니다. 그러면 묘한 지혜가 있으면 진정으로 피안에 닿을 수 있으며 만약 진정으로 묘한 지혜가 없다면 피안에 갈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누가 피안에 갈 수 있을까요? 바로 이 관자재보살님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이 (이 경을 설하실때) 관자재보살을 예로 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대보살님은 깊은 반야를 수행하여 이미 피안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二乘的人只修淺般若,而不知道修深般若。什麼叫淺般若?就是修析法空觀。析就是分析,細細的分析開。分析什麼呢?分析色法和心法。什麼叫色法?色法就是有形有相,可以看得見的。什麼叫心法?心法是你看不見的。有形的就是色法,無形的就是心法。什麼叫有形?就是一切有相、一切有為,這都叫有形。心法是無形無相的,它只是一種知覺。所以有知覺,無形相,這就叫心法;有形相,無知覺,這就叫色法。
 
이승(二乘:성문승과 연각승)은 오직 얕은 반야만 닦고 깊은 반야를 수도하는 법을 모릅니다. 어떤 것을 얕은 반야라 할까요? 바로 공을 수석(修析 수행, 분석)하여 관하였기 때문입니다. 석은 자세히 분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뭘 분석하나요? 바로 색법과 심법을 분석하였습니다. 색법은 무엇입니까? 색법은 바로 형태와 상이 있는 것,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심법은 무엇입니까? 심법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겁니다. 형태가 있는 것은 색법, 무형의 것이 심법입니다. 그럼 형태가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바로 상이 있는 모든 것, 유위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심법은 무형무상의 것으로 오직 일종의 지각을 말합니다. 따라서 지각할수는 있되 형상이 없는 것(有知覺,無形相)을 심법이라 하고, 형상이 있고 지각이 없는 것(有形相,無知覺)을 색법이라 합니다.
 
        按照色、受、想、行、識五蘊來說,這個色是有形相的,所以是色法;受、想、行、識是無形相的,所以是心法。觀世音菩薩在「行深般若波羅蜜多時,照見五蘊皆空」,他把五蘊都照空了,所以說「色不異空,空不異色,色即是空,空即是色,受想行識,亦復如是。」受、想、行、識也和色法一樣,都是空的。
색, 수, 상, 행, 식 오온으로 말하자면 여기서 색은 형태가 있으므로 색법입니다. 수, 상, 행, 식은 무형의 것이라 심법입니다. 관세음보살은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行深般若波羅蜜多時,照見五蘊皆空」  오온이 모두 공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기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라고 하였습니다. 수, 상, 행 식 또한 색법과 같이 모두 공한 것입니다.
 
講到這個空上,般若就是談空的。本來空有很多很多種的,在這兒就簡單的講講五種的空。
이 공으로 말하자면, 반야는 바로 공을 이야기 합니다. 원래 공은 아주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간단히 다섯 가지의 공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第一叫頑虛空。頑虛空,就是我們一般人所知道的、眼睛所見到的這個虛空。為什麼叫頑虛呢?就表示這個虛空是無知無識的,沒有知覺性存在。凡夫所執著的,就是這個頑虛空。什麼叫虛空?就是什麼也沒有,在這兒沒有了。可是這是個真空嗎?不是的,這是頑虛空,凡夫所知道的就是這個虛空。
 
첫번째는 완허공(頑虛空: 영문판 번역은 Insensate emptiness 무정의 공)입니다. 완허공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알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이것의 비어있음을 말합니다. 왜 완허라고 할까요? 이 비어있음(虛空*주: 허공으로 언급된 것은 모두 '비어있음'으로, 공으로 표기된 것은 '공'으로 번역하기로 함)은 앎이 없고 인식할 수 없음(無知無識)을 표현합니다. 범부가 집착하는 것은 바로 이 완허공입니다. 어떤 것을 비어있다고 하나요? 어떤 것도 없는 것, 여기에 없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공입니까? 아닙니다. 범부들이 아는 이 비어있음을 완허공이라고 합니다.
 
        第二叫斷滅空。斷滅,這是什麼呢?這是外道所執著的。外道不知道這個空理,他說:「人死了也就沒有了,就斷滅了,就空了。」所以執著有一個斷滅空。
 
두번째는 단멸공(斷滅空)입니다. 단멸은 무엇인가요? 이것은 외도가 집착하는 것입니다. 외도는 공의 이치를 모르고 말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없어지는 것이다. 바로 끊어지고 멸하는 것, 바로 공해지는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단멸공에 집착합니다.
 
        第三叫析法空觀。這個二乘的小乘人就修析法空觀。析法,就是分析這個法。他分析這個色就是色,心就是心。他不知道這些都是空的,因為他沒有證得真空的妙理,所以就在化城上停留住了。化城是個虛妄的地方,他就站在那個地方不再向前了。修析法空觀,就叫淺的般若,不是深的般若。修行淺的般若,他這個分段生死是了了,可是變易生死沒有了
 
세번째는 석법공관(析法空觀)입니다. 이 이승의 소승들은 석법공관을 닦습니다. 석법(析法)은 즉 법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그는 색이 색이라고, 마음은 마음이라고 분석합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공하다는 것을 모르는데 이는 그 자신이 진공의 묘한 이치를 증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성*(化城 transformation city *주: 법화의 일곱가지 비유 중 하나. 소승의 열반을 비유)에서 정체합니다. 화성은 허망한 곳으로 거기에 머물며 다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석법공관을 닦으면 바로 얕은 반야이고 깊은 반야가 아닙니다. 얕은 반야를 수행하면 생사를 끝내는 것은 확실히 알게 되지만, 변역생사(變易生死 (birth and death of the fluctuations)가 없습니다.
 
 
        什麼叫分段生死?我們每一個人有一個身體,你有你一分,我有我一分,各有各的一分,這叫分。每一個人由生到死,也各有一個段落,這叫段。各有一份、各有一段,這叫分段生死。段也可以說是每一個人有每一個人的形段,或者你五尺chǐ高,他就六尺高,那一個人就七尺高,各人有各人的一段,這叫分段生死。那麼,初果、二果、三果、四果的聖人,證到四果就了了分段生死,但還沒有了這個變易生死。
 
무엇이 분단생사(birth and death of delimited segment)입니까? 모든 사람들은 각각 몸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일(인)분있고 나도 일(인)분 있습니다. 각자 각자의 주어진 것이 있습니다. 이를 분分이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각자 하나의 단락段落이 있기 때문에 이를 단段이라고 합니다. 각자 주어진 것이 있고, 각자 나뉘어진 단락이 있기에 분단생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단은 또한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형단形段(형태적 구분)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너는 오척이고 그는 육척이고 저 사람은 칠척이고 사람마다 각자의 구분이 있는 것으로 이를 분단생사라 합니다. 그러면, 초과, 이과, 삼과, 사과의 성인은 사과를 증득하여 분단생사를 분명히 알았으나 이 변역생사가 아직 없습니다.
 
 
        什麼叫變易生死呢?變,就是變換,就是交易、貿易,互相變化。這變易生死就是分段生死的根本。怎麼說呢?這變易生死就是這個種種的妄想,這妄念遷流,前念滅後念生,後念滅後後念又生,這樣生了又滅、滅了又生,這就叫生死。這一念滅就是死了,這一念生就是又生了。也就是我們這個妄想,在四果阿羅漢還沒有斷盡,必須要到大乘菩薩才能斷盡這個變易生死,沒有妄想。這個變易生死,也就是我們這生死的一個根本。我們為什麼有生死?就因為有妄想!可是,這個妄想又是從什麼地方來的呢?妄想的來源,就是從無明那兒來的。因為有無明,所以就生出種種的妄想。妄想生滅不停,這就是變易生死。
 
무엇을 변역생사라 할까요? 변變은 바로 변환, 교역, 무역, 서로 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변역생사는 바로 분단생사의 근본입니다. 어째서일까요? 이 변역생사는 바로 이 모든 망상이, 망념이 흘러가는데 앞선 생각이 멸한 뒤 다음 생각이 생기고, 다음 생각이 멸한 뒤에 그 다음 생각이 또 생기는, 이렇게 생기고 또 멸하고, 멸하고 또 생기고 이것을 생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이 멸한다는 것이 사死를 말하고 이 생각이 태어나는 것이 생生을 말합니다. 우리의 망상은 아라한이 되어도 끊어지지 않고 대승 보살에 달해야만 비로소 이 변역생사를 끝낼 수 있다는 것, 망상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변역생사는 또한 우리의 생사의 근본인 것입니다. 우리는 왜 태어나고 죽나요? 바로 망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망상은 또한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망상의 근원은 무명입니다. 무명이 있기에 모든 망상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망상의 생과 멸이 끝이 없는 것을 변역생사라고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