妄想遷流行業排。「妄想」就是想蘊;「遷流」這是行蘊;「行業排」這個行蘊,也是和它排列到一起。
망상천류행업배 妄想遷流行業排
망상은 바로 상온想蘊입니다. 「(시간이)흐르는 것 遷流qiānliú」는 행온行蘊입니다. 「행업배 行業排」 이 행온은 또한 업과 함께 순서에 맞춰서 배열된다는 것입니다.
識乃了別五陰具。「識乃了別」,這個識蘊是個了別的作用,了別就是分別。「五陰具」,這樣五陰就具足了。五陰就是色、受、想、行、識。
식내료별오음구 識乃了別五陰具
「식내료별 識乃了別」 이 식온識蘊은 분별의 작용입니다. 「오음구 五陰具」, 이렇게 오음이 전부 갖춰진 것입니다. 오음은 색, 수, 상, 행, 식 입니다.
鏡花水月絕塵埃。「鏡花」,色、受、想、行、識這五陰,就好像鏡中的花似的,鏡裏頭照出來的花。「水月」,又像水裏頭的月。「絕塵埃」,沒有一點塵埃的染污,這也就是五蘊皆空的意思。
경화수월절진애 鏡花水月絕塵埃
「거울 꽃 鏡花」 색, 수, 상, 행, 식 이 오음이 거울속의 꽃, 거울에 비춰진 꽃과 같습니다. 수월은 물속의 달과 같은 것이며 「絕塵埃 절진애」 는 티끌하나 없다는 것이며 이것 또한 오음이 모두 공하다는 것입니다.
空而不空明大用。在你還沒明白五蘊是空的時候,會有很多的煩惱妄想,很多的麻煩。你若明白了,就在這裏就能轉識成智。「明大用」,就能在這個真空裏邊生出妙有;生出妙有,這就有一種非常大的妙用。
공이불공명대용 空而不空明大用
오온이 모두 공하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지 못한 때에는 많은 번뇌 망상이, 많은 성가심이 있습니다. 만약 명백히 알게 되면 바로 여기서 앎을 지혜로 전환할 수 있게 됩니다. 「명대용 明大用」은 바로 이 진공에서 나타난 묘유妙有이며 묘유가 생기면 이것이 바로 매우 큰 묘용妙用이라는 겁니다.
見猶未見樂快哉。「見猶未見」,在這個時候「見猶離見」,你看見了也等於沒有見一樣,不為境界所轉,這樣你才能得到真正的快樂,所以說「樂快哉」。
견유미견악쾌재 見猶未見樂快哉
「견유미견 見猶未見」 하는 때는 당신은 보지만 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경계로 인해 맴돌지 않아 이렇게 당신은 진정한 즐거움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락쾌재 樂快哉」라 한 것입니다.
도일체고액 度一切苦厄
度過苦海出輪迴 雨霽天晴月正輝 도과고해불륜회 우제천정월정휘
乾元道體人中聖 不壞金軀世上稀 간원도체인중성 불괴금구세상희
脫生何須千年藥 證滅豈待萬劫期 탈생하수천년락 증멸개대만겁기
二死永亡五住盡 逍遙法界任東西 이사영망오주진 소요법계임동서
度一切苦厄。 「度」,就是度脫;「一切」,就是包括一切。這個一切是指什麼說的呢?是指這個「苦厄」說的。苦,就已經不太好受,再加上一個「厄」,就更難受了。這個「厄」字,有的人把它念成一個「危」字,認為是危險的危,這就錯了。「厄」是厄難,厄難和危險意思,沒有差十萬八千里,大約只差一根頭髮這麼多;雖然只差一點點可是各位要知道,差之絲毫sīháo,就繆miù之千里呀!不可以不謹慎jǐnshèn。你差一點不是嗎?到那個目的地,就遠了很遠很遠的!那麼我希望學中文的,好像某某人你切記要認清楚這個字。這個字,是讀一個「厄」字,不是讀「危」字。聽清楚了嗎?要特別注意的!這一點點,你念錯了,人家說那個外國的某某法師,連個《心經》都不會念!一個『厄』字,他念成一個『危』字了。那可真危險了。
도일체고액. 「도 度」는 바로 건너가 벗어난다는 의미이며 「일체 一切」는 모든 것을 포괄한 전부를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가르키는 것일까요? 바로 이 '고액'을 말하는 겁니다. 고苦도 이미 견디기 힘든데 거기에다가 액厄까지 더하니 더 견디기 힘들어진 것입니다. 이 '액'이라는 글자를 어떤 사람은 위험의 위로 여겨서 '위危'로 읽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액'은 액난입니다. 액난과 위험의 의미는 그렇게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머리카락 하나 차이일 뿐입니다. 비록 차이는 별로 없지만 아주 작은 차이가 바로 엄청난 착오입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조금 부족하다고요? 그 목적지까지는 아주 아주 멉니다. 특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잘못읽으면 사람들은 저 외국인 법사는 《심경心經》도 제대로 못읽는구나! '액厄'자를 '위(危 위험할 위)'라고 읽다니. 이것이야 말로 위험한 일입니다.
「度」,怎麼叫度呢?度脫,怎麼叫度脫?度脫就是離苦得樂了,這叫度脫了,也就是解脫了。那麼為什麼不說「解脫一切苦厄」,而說「度脫一切苦厄」?因為這是接著上邊的「照見五蘊皆空」來的。這個「度」含有修行的意思,你雖然照見五蘊皆空了,但是還要去修行;你修行,才能度一切苦厄。你若不修行,單單照見空了,你活該你照見空了!你照見空了又有什麼用!你知道是空了,你感覺到是空了,但是還得要去行去。這是所謂「理可頓悟,事須漸修」,在理上你雖然已經明白它是空的,但還要去修行去,才能度苦厄。如果你單單知道它是空的,而不修行,空也就也沒有用;有也沒有用,空也沒有用。你要去修行,要去躬行gōngxíng實踐shíjiàn。這個「度」就是躬行實踐,要你實實在在地去修行,實實在在地去做去,不是像口頭禪一樣,說說:「啊!開了悟了!得到阿耨多羅三藐三菩提了!」就可以的。你說開了悟了,怎麼樣開呢?怎麼樣得呢?怎麼樣證得的阿耨多羅三藐三菩提?這是「說者容易,行者難」,說的是法,行的才是道呢!所以你能說必須要能行。你知道是空了,還要去修行,借這個真空而修妙有。
「도度」 어째서 '건너다'라고 하나요? 어째서 도탈(度脫), 즉 건너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을까요? 도탈度脫은 괴로움에서 멀어지고 즐거움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을 도탈이라고 합니다. 또 해탈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왜 「해탈일체고액 解脫一切苦厄」이라고 하지 않고 「도일체고액 度脫一切苦厄」이라고 했을까요? 왜냐하면 이것은 앞쪽의 「조견오온개공 照見五蘊皆空」과 이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건너다'에는 수행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록 당신이 오온이 모두 공하다는 것을 보았더라도, 수행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수행을 하면 비로고 모든 고액을 건널 수 있습니다. 수행을 하지 않으면 공한 것을 볼 뿐, 마땅히 공하다는 것을 보더라도 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공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공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행동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소위 「이가돈오, 사수점수 理可頓悟,事須漸修」인 것입니다. 이치상 이미 그것이 공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으나 수행을 해야 고액을 건널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오로지 공하다는 것을 알기만 하고 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공은 아무 쓸데가 없는 것입니다. 있어도 아무 쓸데가 없고 공해도 쓸데가 없습니다. 수행을 해야 , 몸소 실천해야합니다. 이 '도'는 바로 몸소 실천하는 것이며 확실하게 수행을 해야지, 입으로 하는 선(口頭禪)처럼 '아! 깨달았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고 말아버리면 안됩니다. 당신이 깨달았다면, 어떻게 깨달은건데요? 어떻게 얻은 것입니까? 어떻게 아냑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증명할 수 있나요? 이것이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렵다'는 겁니다. 말하는 것은 법法이지만, 행동하는 것이 비로소 도道인 것입니다. 그래서 말할 수 있다면 반드시 행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공하다는 것을 알았어도 수행을 해야하는겁니다. 이 진공을 빌어 묘유를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度一切苦厄,這不是只度一種的苦厄,而是所有的苦都包括在內了。所有的苦包括:三苦、八苦,無量諸苦。
三苦就是苦苦、壞苦、行苦,又叫三受。所以,以後有人講經講到三受,問你什麼叫三受,不要再說不知道了。三受就是苦受、樂受、不苦不樂受,也就是受苦、受樂、受不苦不樂。什麼叫受?受就是你所接受的,你接受這個苦、接受這個樂、接受這個不苦不樂。苦苦就是個苦受,壞苦就是個樂受。你不要以為樂就沒有苦,樂會壞的,壞了就有一個壞苦。不苦不樂受,不要想:「那是不錯了,也不苦也不樂。」 那叫行苦,也沒有多大意思。
도일체고액, 이것은 일종의 고액만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고통, 내재해있는 것도 포함한 것입니다. 모든 고통이란 삼고, 팔고, 무량제고無量諸苦입니다. 삼고는 바로 고고苦苦, 괴고壞苦, 행고行苦(영문번역: the suffering of the activity of the five skandahs), 이를 삼수三受(three kinds of feeling)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누가 경을 설명하다 삼수를 말하며 이것이 뭐냐고 물으면 모른다고 하지 마세요. 삼수는 바로 고수苦受, 락수樂受,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 또헌 수고受苦, 수락受樂, 수불고불락受不苦不樂 입니다. 무엇을 수受라고 합니까? 수는 바로 당신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당신이 이 고통을 받고, 즐거움을 받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것을 받습니다. 고고는 바로 고를 받는 것이고, 괴고는 바로 락수입니다. 즐거움에 고가 없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즐거움은 망가지는(壞: 망가지다, 상하다, 고장나다 등의 의미라 직역했으나 한국어로 자연스럽지 않아 '사라진다'로 번역해도 괜찮을듯) 겁니다. 망가지면 바로 괴고가 됩니다. 불고불락수를 보고 '저거 괜찮은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니.'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것은 행고입니다. 흥미롭게 여길만한 것이 아닙니다.
還有八苦,八苦是什麼呢?就是生苦、老苦、病苦、死苦、愛別離苦、怨憎會苦yuànzēng、求不得苦、五蘊熾盛苦。yùnchì 誰能沒有生?有生就有生苦。誰能不老?有人說:「小孩子死了,就沒有老了。」雖然沒有老,但是他根本就沒有一種的知覺就死了。不錯!他沒有老,但是他有病苦、有死苦,也可以說他有老苦。怎麼說他有老苦呢?他死那天就是老了嘛!若不老怎麼會死啊!因為他死了,小孩子也就變成老了。由生到死這期間就是老,所以雖然他的壽命沒有一個過程,但也可以說是老了。給他這樣縮短他的生命,那麼他也沒有避免這個老苦。
그리고 팔고가 있습니다. 팔고는 무엇입니까? 바로 생고生苦, 노고老苦, 병고病苦, 사고死苦,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온치성고五蘊熾盛苦 입니다.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태어나면 바로 생고입니다. 누가 늙지 않을 수 있습니까? 누군가 '아이가 죽으면, 늙은 것은 아닌데요'라고 합니다. 비록 늙지 않았지만 이에 대한 지각없이 죽은 것입니다. 나쁘지 않죠! 그는 늙지 않았지만 병고病苦, 사고死苦가 있었기에 노고老苦가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病苦,哪一個也不敢說生病是不苦的,是不是啊?生病都是非常痛苦的,你就算開了悟了,生了病還是一樣苦的。
連釋迦牟尼佛都還有「金槍馬麥」之報,你能說沒有老苦、沒有病苦嗎?釋迦牟尼佛怎麼有金槍馬麥之報呢?因為釋迦牟尼佛在往昔因地做小孩子的時候,有一次那個地方的人都沒有東西吃,就有一條大魚在海裏被人拖到岸上,大家就吃這條魚。在魚還沒有被殺之前,這個小孩曾用一根棍子照著魚的頭打了幾棍。所以佛成佛以後,還是要受這個頭痛之報,好像槍刺著那麼痛,這叫金槍。
병고, 과연 누가 아픈 것이 괴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나요? 병이나면 아주 괴로운 겁니다. 비록 당신이 깨달았다고 해도 병이나면 똑같이 괴로운 겁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금창마맥 金槍馬麥*」의 보를 받으셨는데, 늙고 병드는 고통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석가모니부처님은 어째서 금창마맥의 보를 받으신걸까요? 왜냐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 인지(因地 the casual ground* 성불 전의 불도를 닦는 시기, 위치) 시기의 아이였을때, 그 지역의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바다에서 큰 물고기를 잡아 해안가 기슭으로 끌고와 다같이 이 물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물고기가 죽기도 전에 이 어린아이가 막대기로 물고기의 머리를 몇 번 때렸고, 그래서 부처님이 성불하신 뒤에 이런 두통의 보를 받아야했던 겁니다. 마치 창으로 찔리는 듯한 고통이었습니다. 이를 금창이라고 합니다.
*금창마맥 金槍馬麥 jīnqiāngmǎmài: 부처님이 전생의 과보 때문에 금창(나무창)으로 머리를 치는 듯한 두통에 시달리고 말의 먹이를 3개월 동안 먹어야했던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성불한 뒤라도 인연과보는 아무도 피할 수 없다는 가르침을 주는 이야기.
馬麥之報是釋迦牟尼佛在因地的時候,有一次說了一句錯話,他對一個修道的人說:「你這樣修道還不夠苦行,你若真正修苦行的話,就應該吃馬吃的麥。」等釋迦牟尼佛成佛了之後,有一年結夏安居,到一個城裏頭,這國王不供養他,只拿一些馬吃的麥子,給釋迦牟尼佛和比丘們吃。所以在因地所造的業,在果地上都要受報的。
마맥의 업보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불 전에 한마디 말을 잘못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어떤 수도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고행이 부족해서야. 만약 진정한 고행을 닦는다면 말이 먹는 보리를 먹어야 할거다'라고 말했습니다. 석가모니가 성불하신 뒤에 하안거를 마치고 어떤 도시에 갔는데 이 국왕이 부처님께 공양을 하지 않아 말이 먹는 보리만 좀 내와서 석가모니부처님과 비구들에게 먹게 했습니다. 그래서 성불 전에 지은 업은 과를 득한 뒤에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死苦,人人都不歡喜死,為什麼?大約就是因為苦的關係。除了生老病死,還有愛別離、怨憎會、求不得、五蘊熾盛這種種的苦,所以叫諸苦。我們現在修行,可以把這些三苦、八苦、無量諸苦都免去,所以叫「度一切苦厄」。「度一切苦厄」,我有一首偈頌,讀出來給大家聽一聽。
사고(死苦) 사람은 모두 죽고싶지 않아합니다. 왜일까요? 거의 고통 때문입니다. 생로병사를 제외하고 또 애별리, 원증회, 구부득, 오온치성 이런 각종 고가 있어서 제고諸苦 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수행을 하며 이 삼고, 팔고 무량제고를 모두 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度一切苦厄 도일체고액' 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한 편의 게송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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