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상인] 반야심경 005 (47~52)
#자성 #자성반야 #묘명 #杳冥 #본존 #本尊 #삼광 #반야광 #견색즉공 #각지성 #覺知性 #지각성 #知覺性 #심위형역 #心為形役
第四叫體法空觀。緣覺修體法空觀。
네번째는 체법공관(體法空觀) 입니다. 연각은 체법공관을 닦습니다. 그들은 법의 공함에 관한 신체적인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영문판에만 있고 중문판 하드카피, 웹 모두 없는 문장임. who have the bodily experience of the emptiness of dharmas.)
第五叫妙有空觀。菩薩就修妙有的空觀,妙有的真空。那麼,這觀世音菩薩,他行深般若波羅蜜多時,就是修這個妙有的空觀。他能「照見五蘊皆空」,就是修深般若所得到的成績,得到的功能。那麼現在就依照我所作的這個偈頌,略略來講一講。
다섯번째는 묘유공관(妙有空觀)입니다. 보살은 바로 묘유한 공관, 묘유한 진공(真空)을 닦습니다. 그러면 이 관세음보살님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실때 바로 묘유한 공관을 닦는 것입니다. 그는 '오온이 모두 공한것을 볼'수 있습니다. 바로 반야를 닦아 얻는 성과이며 이로써 얻는 기능입니다. 그럼 이제 제가 지은 이 게송으로 간략히 한번 말해보겠습니다.
行道修身莫外尋。你想修行這個道,修這個身,「莫外尋」,不要向外去找去,要在你自性裏來找。
행도수신막외심 行道修身莫外尋
당신이 이 도를 닦고 싶으면 이 몸을 닦는 것이지 「막외심(莫外尋)」' 밖에서 찾지 말라는 겁니다. 자신의 자성에서 찾아야 합니다.
自性般若深密因。在自性般若裏邊,就有一個深密的這種的種子。
자성반야심밀인 自性般若深密因
자성반야에 깊고 정밀한 이런 종류의 씨앗이 있습니다.
白浪沖霄黑波止。在你修道的時候,這個白浪就是智慧,好像水流的白色波浪;黑波就是煩惱。你智慧高了,這黑波就止了,煩惱就停止了。這個「行深般若波羅蜜多」的「深」,也就是高的意思。怎麼見出它深呢?就因為它高,由高的地方向下看不見底dǐ,所以叫深般若。
白浪沖霄黑波止 백랑충소흑파지
도를 닦을때, 이 하얀 파도는 지혜로써 흐르는 물의 하얀 파도같습니다. 까만 파도는 번뇌입니다. 당신의 지혜가 높아지면 이 까만 파도는 멈춥니다. 바로 번뇌가 멈추는 것입니다. 이 「행심반야바라밀다 行深般若波羅蜜多」의 「심深」은 또한 높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깊다는 것을 볼 수 있나요? 바로 그것이 높으면 높은 곳에서 저 바닥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깊은 반야라고 부릅니다.
涅槃彼岸任運登。你有了智慧,自然就會到達這個涅槃的彼岸。「任運登」,就很容易地、很自然地,就到彼岸了,一點力氣都不需要費。
열반피안임운등 涅槃彼岸任運登
지혜가 생기고 나면 자연스럽게 열반의 피안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任運登(임운등)」은 아주 쉽게, 아주 자연스럽게 피안에 달하는 것입니다. 힘을 하나도 낭비하지 않습니다.
時兮時兮勿錯過。我們修道,這個光陰是最寶貴的,不要空空把它放過了,所以說「時兮時兮」。這個時候,你不要把它放過去了。什麼時候呢?就是行般若波羅蜜多這個時候,這個時候你不要把它空過去。
시혜시혜물착과 時兮時兮勿錯過
우리가 도를 닦을때 시간은 가장 귀한 것으로 허망하게 놓쳐버려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시간아, 시간아 (時兮時兮)」 입니다. 이때 그것을 그냥 그렇게 보내버려서는 안됩니다. 어떤 때인가요? 바로 반야바라밀다를 행할때입니다. 이때 당신은 그것을 그냥 그렇게 허무하게 보내서는 안됩니다.
慎之慎之取天真。你要很謹慎、很謹慎的,不要在這個時候忽略了,不要把這個光陰都空過了,這樣修行才能得到這個深般若,也就是天真,一種天真的道理。
신지신지취천진 慎之慎之取天真
아주 근면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이 시간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수행을 해야 비로소 이 깊은 반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천진한 것이며 일종의 천진한 도리입니다. (천진: the natural spontaneity that sage and child alike possess)
杳杳冥冥通消息。這種事情是杳杳冥冥的,你想看一看,卻視之不見;你想聽一聽,也聽不見。
묘묘명명통소식 杳杳冥冥通消息
이런 일은 바로 묘묘명명(杳杳冥冥 심원하고 깊고 어두운 모습, 영문판에서는 'mirage 신기루'로 번역)한 것입니다. 당시은 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보면서도 볼 수 없습니다. 듣고 싶지만 들리지 않습니다.
恍恍忽忽見本尊。在這個時候呀,你杳杳冥冥有一點好消息了。恍恍忽忽地,你看著說是真,又好像沒有形象;你說是沒有形象,又好像見著個什麼似的。「見本尊」,這本尊就是自己的自性。
황황홀홀견본존 恍恍忽忽見本尊
이때, 당신의 묘묘명명함속에 조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렴풋이(?) 보면서 진짜라고 말하지만 또 형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형상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뭔가가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견본존(見本尊)」 에서 본존은 자신의 자성을 말합니다.
조견오온개공 照見五蘊皆空
三光普照透三才 一歸合處復一來 삼광보조투삼재 일귀합처복일래
見色即空受納是 妄想遷流行業排 견색즉공수납시 망상천류행업배
識乃了別五陰具 鏡花水月絕塵埃 식내료별오음구 경화수월절진애
空而不空明大用 見猶未見樂快哉 공이불공명대용 견유미견악쾌재
三光普照透三才。「三光」,就是日月星三光。「普照」,三光是普遍照耀的。「透三才」,三才就是天地人。這兒的三光,說的是文字的般若光、觀照的般若光、實相的般若光。實相的般若光也就是深般若的光。以這三種的光,「普照透三才」,把天地人都照遍了。
삼광보조투삼재 三光普照透三才
「三光 삼광」 바로 해, 달, 별 삼광 을 말합니다. 「普照 보조」 삼광이 널리 두루 밝게 비치는 것입니다. 「투삼재 透三才」의 삼재三才는 천지인을 말합니다. 여기서 삼광은 문자의 반야광(般若光), 관조의 반야광, 실상의 반야광입니다. 실상의 반야광은 또한 깊은 반야의 빛입니다. 이런 세가지의 빛이 널리 삼재를 비추어 스며듭니다.
一歸合處復一來。「一」,就是人的這個自性。「歸合處」,合處也就是性的那個處。神光不是有首偈頌說:
萬法歸一一歸合,神光不明趕達摩;
熊耳山前跪九載,只求一點躲閻羅。
萬法都要一歸,那麼「一」就是什麼呢?就是我們這個人的心,也可以說是這個性。「一歸合處」,合就是相合了,和什麼相合了?和這個佛性相合了。你和佛性相合了,然後又「復一來」,又生出這個一的妙用。這種妙用就是你所成的那個佛。這個叫「復一來」的,就是你這個佛。
一歸合處復一來 일귀합처복일래
「一 일」은 바로 사람의 자성입니다. 「귀합처 歸合處」 합처는 성(性)의 자리를 이릅니다. 신광의 게송이 이런 것이 있지요.
萬法歸一一歸合,神光不明趕達摩; 만법귀일일귀합, 신광불명간달마;
熊耳山前跪九載,只求一點躲閻羅。내이산전궤구재, 지구일점타염라.
만법은 모두 하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一(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 이 사람의 마음이며 또 성(性)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一歸合處 일귀합처」의 합은 서로 합치된다는 뜻인데 무엇과 합치되었다는 걸까요? 불성과 합치된 것입니다. 당신과 불성이 합치가 되어 그런 뒤에 「復一來 복일래」 또 이러한 하나(一)의 묘한 쓰임(妙用 wonderful functioning of the one)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런 묘한 쓰임은 바로 당신이 이룬(所成的) 그 부처입니다. 이것을 '복일래'라고 부르고, 부처인 당신을 말합니다.
見色即空受納是。「見色即空」,這個「見」可以見到色,但是見到的這個「色」,本來就是空的。怎麼說色就是空呢?我們凡夫都執著這個色,執著什麼色呢?這個色法雖然有很多種,但它的總體就是我們這個身體,這叫色身。有人說:「色身怎麼是空的呢?實實在在的在這兒有呀!它會穿衣服,又會吃飯,又會睡覺,怎麼會空呢?」怎麼會空?你若明白這個色是怎麼樣有的,你就會空了。就像方才講的析法真空,就這樣分析。
見色即空受納是 견색즉공수납시
견색즉공 이 '견'은 색을 볼 수 있지만 본 이 '색'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공한 것입니다. 어째서 색이 공하다고 하는 것일까요? 우리 범부들은 모두 이 색에 집착합니다. 어떤 색에 집착합니까? 이 색법은 비록 많은 종류가 있지만 그러나 그것의 총체(總體 전체)는 바로 우리의 이 몸입니다. 이를 색신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색신이 어떻게 공하다는 것이냐? 참말로 여기에 있는데! 옷을 입을수도 있고, 밥을 먹을수도 있고, 잠도 자고 하는데 어떻게 공하다는 것이냐?'라고 할겁니다. 어떻게 공한가요? 당신이 만약 이 색이 어떻게 있는건지 명백하게 안다면 당신은 바로 공한 것입니다. 마치 방금 이야기한 석법진공析法真空 처럼, 이렇게 분석해보겠습니다.
這個身體是色的總相,地、水、火、風是色的別相,一個分開的相。我們這個身體,是由地、水、火、風和合而成的。我們身上的皮、肉、筋jīn、骨,這就是地大;吐沫、大小便溺、水份、汗液,這就是水大;身上的溫度,這就是火大;我們身體又有呼吸、運轉,這就是風大。在這四大和合,就成立了一個身體;四大若分張,這個身體就滅了,沒有了--火就歸於火大,水歸於水大,風歸於風大,地歸於地大,各有所還,都回到它的本位去了,那麼這就是空了。所以一般凡夫執著「這個身體是我」,是個錯誤!這身體不是我嗎?身體不是我。那麼什麼才是我呢?你能以支配身體,能以有見、聞、嗅、嚐、覺、知,有這種知覺的,這知覺性才是我。
이 몸은 색의 총체적인 상으로 지수화풍은 색의 개별적인 상입니다. 하나의 분리된 나눠진 상입니다. 우리의 이 몸은 지수화풍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몸에있는 피부, 살, 근육, 뼈 이것들을 지대地大 라 하고; 침, 대소변, 수분, 땀 이를 수대水大라고 하며; 몸의 온도를 화대火大라고 합니다; 우리 신체는 또한 호흡을 하고 순환을 하는데 이를 풍대風大라고 합니다. 이 사대가 화합하여 하나의 신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사대가 만약 흩어진다면 이 몸은 곧 멸하는 것입니다. 화는 곧 화대로 돌아가고, 물은 수대로 돌아가고 바람은 풍대로 돌아가고, 지는 지대로 돌아가는 식으로 각자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면 그러면 그것이 바로 공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보통 범부들이 '이 몸은 나야'라고 집착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 몸이 내가 아니냐고요? 몸은 내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나인가요? 당신이 몸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으로서,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 것, 맛보는 것, 만지는 것 그리고 아는 것(견, 문, 취, 상, 각, 지) 같은 지각을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이 지각의 성性을 비로서 나라 할 수 있습니다.
那麼這身體是什麼呢?這身體只可以說是「我的」,我的身體,不能說這個身體就是我。就好像什麼呢?這身體就好像一棟房子似的,你住在房子裏頭,不能說這個房子就是你。你若說這個房子就是你,那將來恐怕人人都會笑的,甚至於把人家的牙都笑掉了。
그러면 몸은 무엇인가요? 이 몸은 오로지 '나의 것, 나의 몸'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이 몸이 즉 나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마치 이 몸이 집 같아서 당신이 집에 살고 있는 것이지 이 집이 바로 당신이라고 할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이 집이 당신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모두 비웃을 것입니다.
可是你說這個身體是我,一般人都不會笑你。為什麼沒有人笑你呢?因為一般人都不明白,都以為這身體就是我了。這就好像住到房子裏,就叫這房子是我了。在這個身體裏邊,有個見、聞、嗅、嚐、覺、知的性,這就是佛性,這佛性才是你自己。至於這個身體,只不過因緣和合而成而已,因緣別離就分散了。所以你不能說這個身體是我,只可以說是我的。這是我的身體,我可以不要它,我可以再換一個。你有這種的權利,可是你自己不知道,就因為你住在房子裏邊,不知道外邊的事情,就以為這個房子就是我了,所以不要執著這個房子是我。
그러나 당신이 이 몸이 나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아무도 비웃지 않을 겁니다. 왜 사람들이 웃지 않나요?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은 모두 잘 알지 못하고 모두가 이 몸이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집에 사니까 이 집이 나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몸 안에는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느끼고, 아는 성질이 있는데 이것이 불성이며 이 불성이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이 신체라고 하는 것은 인연에 따라 합하여 이루어진 것 뿐이며 인연이 다하면 흩어질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이 몸이 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는 내 몸이라고 하는 것을 내가 원치 않을 수 있고,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이런 권리가 있지만 당신은 알지 못하고 단지 당신이 집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지 못해 이 집이 나라고 여깁니다. 그러니 이 집이 나라고 집착하지 마세요.
這個色,你把它分析開,這個色也就空了,沒有了。雖然它空,但由這空裏邊,又會變出這個色法--地、水、火、風,和合又成一個身體。有人問:「上帝造人,用什麼造呢?」就是用地水火風來造的。我們也可以用點地、用點水、用點火、用點風來造成一個人。用上一點材料,人人都可以造成很多人。
이 색이라고 하는 것은 당신이 잘 분석해본다면 이 색은 또한 공하다는 것,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공하지만 이 공으로부터 이 색법이 변화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지, 수, 화, 풍이 화합해 이루어진 신체가 그것입니다. 어떤 이는 '신이 인간을 창조했는데 무엇으로 만들었을까요?'라고 묻습니다. 바로 지수화풍을 이용한 것입니다. 우리도 지, 수, 화, 풍을 조금씩 사용해서 사람을 하나 만들 수 있습니다. 재료를 좀 사용하면 우리는 모두 많은 사람을 만들 수 있습니다.
我們這個人身,是由因緣和合而成,因緣別離就散了,因此你不能叫這個身體是我,所以說「見色即空」。你若明白色即是空,就不要再執著這個身體為我了,或是我的,歸我所有。即使歸你所有,你也不要執著,不要執著說:「這身體是我所有的,我得好好幫忙它。」 那你又變成心為形役了。你那個心就是那種的覺知性,你明白這個身體是個色法,是個假的,就不要執著它。不執著它,就把這個色蘊破了,色蘊就空了。「受納是」,受蘊也是這樣子的,和色蘊一樣。
우리의 이 몸이라는 것은 인연이 화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는 것입니다. 이때문에 이 몸이 나라고 할 수 없으며 그래서 「견색즉공(見色即空)」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색이 공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 몸이 나라고 여기거나, 나의 것이라고 한다던가, 나에게 속해있다라고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설령 당신에게 속한 것이더라도 '이 몸은 내가 소유한 것이니 내가 잘 도와야겠다' 이렇게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마음이 형상의 노예(心為形役 심위형역*)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그 마음이 바로 그러한 각지성(覺知性 깨어나 아는 성질, awakened mind)이며, 이 몸이 색법인것, 거짓인것을 알았다면 그것에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색온을 부숴버린다면 색온이 바로 공해지는 것입니다. 「수납시(受納是)」 수온 또한 색온과 같은 것입니다.
*영문주석: 心為形役 xīn wéi xíng yì 이 인용구는 도원명(晉·陶潛 도잠 Táo Qián 《歸去來辭》)의 '귀거래사 Returning Home'에서 온 것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자신의 원칙을 위험에 빠트린 공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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