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기복례 #克己復禮 #공자 #各顧各 #회광반조 #마하사바 #승가에대한비방 #참회
What about evening? You should do the
math, “Today I made a vow early in the
morning, did I follow through my vow?
啊,到晚間呢?要算一算這個賬,說:「喔,我今天一早就發的願,我是不是照這個願去作來著呢?
À, còn buổi tối thì sao? Quý vị phải tính toán, "Ồ, tôi đã lập nguyện vào sáng sớm hôm nay, tôi đã thực hiện đúng lời nguyện đó chưa?
저녁이 되면요? 따져봐야 합니다. "내가 오늘 아침 일찍 원을 발했는데, 이 원을 내가 따랐는가?
Did I make a vow not to be greedy, but my
greedy mind became bigger?
是不是我發願要不要貪心,啊,這個貪心還更大?
Tôi đã phát nguyện là không có tâm tham, vậy tâm tham của tôi có lớn hơn không?
탐심을 내지 않겠다고 발원했는가? 욕심이 더 커졌는가?
I vowed not to have angry mind, but did I
have bigger temper? I vowed not to have
stupid mind, but did I get confused in everything I did?”
要沒有瞋心,啊,這脾氣也更多?沒有癡心,啊,作一點甚麼事情都糊塗就都來了?」
Tôi đã phát nguyện là không có tâm sân, vậy tính khí của tôi có nóng giận hơn không? Không có tâm si, vậy trong mỗi việc làm, tôi có hồ đồ không?
진심을 내지 않겠다고 발원했는데, 성질을 더 부렸는가? 치심을 내지 않겠다고 발원했는데 무슨 일을 하든 어리석게 하지 않았는가?"
You should do the math, was it like that?
So, you should restrain yourself and
observe proprieties all the time.
要算一算,這樣,是不是這樣子?所以時時克己復禮。
Tính xem nó có phải như thế không? Vì vậy, hãy tự kiềm chế bản thân trong mọi thời khắc,
따져봐야합니다. 이렇게 하였는가? 그래서 늘 극기복례 (자기자신의 사욕을 극복하고 예(禮)로 돌아감)합니다.
마스터 질문: 禮 가 proprieties 인가요? 확인 바랍니다.
'예'에 관한 짧은 리서치 About '禮Li'
내가 탐진치가 덜해졌나? 습기입니다. 탐진치에 빠져들게 하는. 우리 마음에 계속 올라오는 탐진치는 습기입니다. 사바세계에서 이런 경향성을 이겨내기가 매우 힘듭니다. 내게 수행은 이 탐진치를 줄여내는 것입니다 천천히. 점진적으로gradually. 내 생각에 매일 자성하라는 것은 디테일에서 길을 잃게 하는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투머치입니다. 자신을 그렇게까지 체크하는 것은 큰 그림을 보는 것을 방해하는 겁니다. 작은 디테일에 걱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큰 그림을 보는 것은. 일반적인, 평소(normal)의 당신의 탐진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씨앗을 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교로서 옳은 방향으로 가다보면 도약하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take a leap
이것은 자성하기 위한 당신을 위해 체크해줄 사람이 없다면 이런 방법을 써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확인해주고 있기 때문에, 필요한 때에 지침을 받을 겁니다. 어제보다 그저께에 비해 퇴보하고 있어 아 큰일났다. 이런 생각은 자신감을 떨어뜨립니다. 이 방법의 결점drawback 입니다. 수행은 길게 보는 것입니다 문제에 빠져야 할 때도 있는 겁니다 도약하기 위해서요.
禮는 아무래도 예의범절proprieties이 아닌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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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중국에는 과거의 더 정직했던 때로 돌아가자는 의미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황제들은 늘 '상황무제' 같은 시기로 완벽한 도덕이 있던 시대로 돌아가자는 그런 내용.
그래서 여기서 복례는 적합한 예의를 회복하자 이런 의미라는 거죠? 우월한 수행으로 복귀하자는 의미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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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여기서의 례가 육조단경에 나오는 례 와 같은가요?
혜능이 말한 것은 여기 공자의 예와는 관계없는 것입니다. 사실 그 가르침은 깨달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극기복례는 스스로 더 잘낫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 조상이 최고야'라고 말해서는 안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군주들에게 세일즈 하는것 같아서 마음에 안듭니다. 당신의 조상들이 최고니까 그때로 돌아가야 된다 이런 말을 한다는게. 당시의 통치자들이 이런걸 듣고 가만히 있었다는게 이해가 안됩니다. 모든 것은 다면적인 측면이 있는 건데 말입니다. 군주들에게 아첨하는 듯한 모습에 짜증이 납니다.
화엄경은 매주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이 세상에 우리보다 월등히 우월한 존재가 얼마나 많은지를 말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보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공자의 대부분의 가르침은 퇴보입니다. 좋은 근간이 있긴 하지만, 영적 도덕성으로 봐서는 낮습니다on a low end. 공자의 가르침에 덕이 충분치 않다고 봅니다.
You should pay attention to yourself at all times. “A Mahasattva does not pay attention to others”.
時時啊管著自己。所謂「摩訶薩不管他」。
Quý vị nên tự quản lấy mình trong mọi lúc. "Ma Ha Tát bất quản tha (Ma Ha Tát không quản người khác)."
여러분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대보살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회광반조: 마하사바와 일반인의 차이점]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야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아야 합니다. 회광반조는 당신이 어떤 현상을 볼때 뭘 보든 번뇌가 인다면, 여기서 중국 가르침이 좀 분명치 않은데, 번뇌가 일지 않으면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때 바로 내 자신을 봐야 합니다. 왜 내가 번뇌로운지. 심지어 마하사바도 자신을 본다는 건데 왜 그럴까요? 그들도 번뇌가 있는 겁니다. 만약 번뇌가 없다면 자신을 볼필요가 없습니다. 그들도 번뇌롭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것은 설명이 안되어있습니다. 마하사바는 신비롭고 완벽하다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준 겁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관여하지 않지만 번뇌가 일때만. 그것이 바로 그들이 다른 이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스스로의 번뇌만을 본다는 겁니다.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우리는 하루 종일 번뇌롭다는 것이고 그들은 가끔 번뇌로운 것입니다. 질문 있는 사람?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바로 적극적인 청취를 말합니다.
[마하사바의 작업 방식]
질문: 마하사바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안갖는다고 한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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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마하사바가 번뇌로울 만한 것은 뭐죠?
마하사바는 우리와 다릅니다. 그들은 자비가 있습니다. 우리와 다르게. 자비는 다른 사람이 괴로우면 그들도 괴롭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비밀 재료입니다. 누군가 고통속에 있는것을 알아차리면 마하사바도 같은 종류의 고통을 느끼고 그렇게 되면 스스로 그걸 고칠 방법을 찾게 됩니다. 바로 고통받고 있는 그 다른 사람을 고쳐주면서 말입니다. 이해가 되나요? 그것이 마하사바가 작업하는 방식입니다. '오늘은 누굴 도와주지?' 하면서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세상 모든 고통을 보고, 내가 이런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 이러는 거죠. 예를 들어 보디사바 같은 미스터 부페 같은 사람은 돈을 벌어서 자선사업에 써야겠다 하면서 옷이 필요한 사람들, 약이 필요한 사람, 교육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겠다 하는 생각에 그런 결심을 하는 것이죠. 사바세계에 가서 그들을 돕겠다하는 겁니다. 다른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롤 모델도 되겠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에 대해 비판적인 겁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이 청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돈을 벌어서 그걸 쓸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배우기에 그는 너무 늙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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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마스터도 번뇌가 있나요?
매일, 매시간 번뇌롭습니다. 빨리 깨달아서 덜 번뇌롭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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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다른 사람은 안보고 자기만 보는 이런 경우가 이기적이고 기생충적인 아라한 같습니다.
[승가를 비방하는 것의 업보]
아라한이나 보살에 대해 나쁘게 말하지 마세요. 그들이 잘못했더라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겁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같은게 아닙니다. 불자라면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마세요. 특히 승가를요. 많은 보디사바, 마하사바가 승가 사이에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조심해야 합니다. 승가를 비방한다면 아주 높은 보디사바를 비난한다면, 나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선화상인의 제자 중에 그런 경우 있었는데, 선화상인은 그들을 아예 건드리지도 않았습니다. 마하사바는 다른 사람 안보고 자기만 본다는 것이 그냥 들리는 것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절대 비방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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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제가 누군가에게 분노를 일으키거나 탐욕, 훔치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면 그 사람에게 빚을 지는 건가요?
누구에게 빚을 지는 건지 아닌지 그런 걸 알려고 하지 마세요. 비생산적입니다. 당신이 구해야할 정보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와 관련된 겁니다. 만약 빚을 지는 것이다 라고 안다고 해도 그에 대해서 뭘 할 수 있나요? 불교에서 그 사람에게 빚을 졌는지 아닌지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있다는 것, 그것을 참회하는 것, 마음으로 업을 짓는 것, 아무도 몰라도 업을 짓는 겁니다. 그에 따른 결과가 있을 겁니다. 괴로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회해야 합니다. 더 열심히 수행해서 그런 업을 더 이상 짓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더 생산적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은 쓸모없는 일입니다.
선화상인은 조사 중에서도 아주 독특한 가르침의 방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보디달마, 육조혜능처럼 특별한 인물 입니다. 그 외의 조사들은, 현재 조사 포함해서, 그들은 그 정도의 지혜가 없습니다. 그저 지식으로 여러분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고 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실수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주는 대신 말입니다. 그게 핵심name of the game인데도요. 수행은 더이상 업을 짓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거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선화상인의 가르침은. 다른 사람을 보지 마라 그것은 업을 더이상 짓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게 선화상인이 하는 말입니다. 끝없이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찾지 말고, 난 내 잘못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입니다.
Mind your business, and fix your own mistake.
I'll teach you how. 이렇게 가르친 유일한 분입니다. 그게 답니다.
그러니 조심하세요. 우리 세대 제자들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마세요. 절대 승가를 비방하지 마세요. 선화상인만이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들이 그냥 가라앉게 뒀습니다. 성자를 비방하거나 비난하면 아무도 당신을 가르치지 않을 겁니다. 그것이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동사同事 일 수 있는 겁니다. 감히 그들을 욕보인다면, 여러분 전부다 조금 밖에 보지 못하면서, 그들을 비방slander 한다면 저도 여러분을 건드리지도 않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을 가르칠 사람은 아주 별볼일 없는 승가만 남습니다. 좋은 승가는 당신을 가르치지 않을 겁니다. 이것은 지옥에 가는 것보다도 훨씬 더 나쁜 일입니다. 당신은 고통받고, 어리석은 상태로 있게 될겁니다. 영원히.
Mahasattva, the Mahasattva does not watch
others; they only watch themselves.
摩訶薩,這個大菩薩不是管人家的,是管自己的。
Đại bồ tát, đại bồ tát không trông nom người khác, họ tự quản bản thân họ.
마하살, 이 대보살은 남의 집안이 아니라 자기 집안을 다스립니다.
122ㅍ
“Amitabha Buddhas each look after
themselves.” Did I look after myself?
「彌陀佛各顧各」,啊,我自己把自己照顧好了沒有?
Phật A Di Đà mỗi mỗi tự chiếu cố các ngài. Tôi có tự chiếu cố bản thân mình không?
"미타불은 각자 자신을 돌봅니다." 내가 자기를 잘 돌봤나요?
彌陀佛各顧各 아미타불이 이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요? 아미타불이 그냥 일반 부처에 대한 표현이라면 왜 그냥 佛各顧各 하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표현하면 더 펀치할텐데 말입니다.
부처는 그들을 스스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왜 아미타불이 자신을 바라봐야 하나요? 말이 안됩니다.
"아미타불~!('오마이갓'처럼) 각자 각자의 일을 보라고!" 이것이 내가 이걸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입니다. 다른 의견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All in all, if you really want to do it for the
true, Bodhisattvas will help you.
啊,總而言之,你若想往真了作,那菩薩會幫助你的。
Nói tóm lại, nếu quý vị muốn đi đến sự chân thật, thì bồ tát sẽ hỗ trợ cho quý vị.
요컨대 만일 진실하게 행동하려 한다면 보살은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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往真了作 le 인가 liao 인가? 결론은 일단 le 로. 的de 를 대신 써도 됨.
이 가르침은 간단하게 들리지만 많은 '법'을 담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아시아) 뭘 해도 상관없지만 내 체면을 잃게 하지마. 같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들이 진실하지 않다고 단정하는 것condeming them to be untrue 이건 전혀 수행이 아닙니다. 진실하지 않다면, 진전하지 못할 겁니다. 진짜 진전하려고 한다면 당신의 진실된 동기를 드러내게 할겁니다. '척'할 수 없을 겁니다. 체면을 잃게 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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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홍 코멘트: 你若想往真了作는 당신이 진정한 수행자라는 의미입니다you're a real cultivator.
이게 해석이 맞는것 같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진짜 하는겁니다 really doing it. 진짜 진전하길 원해야 됩니다. 끔찍하게 원해야 합니다. 그러면 보살이 와서 도와줄거라는 말입니다. 진짜 누군가를 돕고 싶다면 보살이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불자일 필요도 없습니다.
낮은 레벨에서 거친 욕망이 올라옵니다. 우울증도 마찬가지 입니다. 낮은 레벨에서는 침대에서 아침에 나오지 못합니다. 누워서 계속 생각합니다. 가서 할만한 가치 있는 일이 없어. 하면서 계속 눕습니다. 진전하면 우울이 약하게 옵니다. 우울증 있으면 평생 D 고스트가 쫓아 옵니다. 오늘은 좀 게으르고 싶다 이정도. 조금 더 잘까. 그게 디고스트의 공격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공격합니다. 하지만 낮은 레벨에서 보다는 관리할만 합니다. 바보같은 사람들만 누군가의 행동의 이유를 알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그건 시간 낭비입니다.
If you don’t really want to do it, you don’t
truly want to cultivate, then Bodhisattvas
won’t care about you.
你若不想往真了作,往真了修行,那菩薩也不管你。
31:40 - 32:00 repeat
Nếu quý vị không thật sự muốn làm, không thật sự muốn tu hành, thì bồ tát sẽ không chiếu cố quý vị.
만일 진실로 행하지 아니하고 진실로 행하지 아니한다면 그 보살도 당신을 상관하지 아니합니다.
심플하게 그런겁니다. 왜 진전하지 않고 싶어하는 사람을 보살이 돕겠습니까?
126ㅍ
Now this year is almost over, today is the
twenty-third, tomorrow will be the twenty-
fourth.
那麼今年呢這一年也就快啊過完了,今天是二十三,啊,明天就二十四了。
Hiện tại năm nay sắp qua hết rồi, hôm nay là ngày 23, ngày mai là 24.
그럼 올해는 한 해도 곧 끝납니다. 오늘은 23일, 내일이면 24일이 됩니다.
When this year’s over, a new year will
come. In the new year, we should again
be a new person, and let go all the old.
這一年過完了,又有一個新年來了,我們這個新年還要作一個新人,啊,把那個舊的都放下。
Năm này qua đi, một năm mới lại đến. Trong năm mới, chúng ta phải làm một con người mới, và buông bỏ tất cả cái cũ đi.
한 해가 다 가고 또 새해가 왔으니, 우리 이번 새해에는 또 새사람이 되야 합니다. 그 낡은 것 다 내려놓습니다.
To be a new person is to be a new cultivator.
In China, the so-called old cultivator, old
cultivator. That is, to cultivate until we become old.
那麼作一個新人,也就是作一個新修行人。在中國都叫老修行,老修行,這個修行啊,都修行老了。
Làm một người mới tức là làm một người tu hành mới. Ở Trung Quốc, cái gọi là lão tu hành, lão tu hành, nghĩa là tu hành cho đến khi chúng ta già (lão).
그렇게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새로운 수행인이 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이를 노수행, 노수행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늙을 때까지 수행합니다.
[자주, 새로운 수행자로 거듭나기]
새해에 리셋한다는 개념, 다시 시작한다는 것. 이 개념은 굉장히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 잘못은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것. 당신을 이해하는 것. 작년에는 망쳤지만 심리적으로 이게 좋은 전통인것 같습니다. 여기에 여러분의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말씀드립니다. 과거의 실패, 잘못, 심지어 성공까지 잊고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굉장히 영감을 주는inspiring 내용 입니다.
그래서 왜 새해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샴페인, 카운트다운, 라이팅 이것 다 좋지만, 왜 1년에 한번만 해야됩니까? 더 자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개월에 한번 6개월에 한번. 마치 회사에서 하는 정기성과평가처럼 말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진전했어요'라고 하는 말은 '당신은 더이상 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그럴때 '난 특별하다' 이런 생각 말고, 지혜가 좀 생겼으니까 전처럼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전만큼 욕심내지 않고 전만큼 화내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새해의 결단resolution 인 것입니다. 선칠 기간동안에는 실패하는 겁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하지만 절에서 이런 환경에서 열심히 한다면 새로운 수행자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리뉴얼 할때는, 스스로의 기준을 높여야 합니다. 그것은 새해와 상관없습니다. 새해는 인간의 관습일 뿐입니다. 여기서 마쳐야겠습니다. 오늘 날씨 때문에 다른 절에 있는 사람들이 산호제 같은, 귀가 할때 위험할 수 있습니다. 조심하세요.